뉴요커 기사, 프랑스 부모들도 그들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른다

프랑스 육아법은 거의 완벽한 것으로 미국 미디어에 의해 묘사된다. 아이들은 통잠을 자고, 비트와 리크(대파같이 생긴 야채), 블루치즈를 먹고, 손님이 가실 때는 현관에 나와 의젓한 키스로 손님을 배웅한다.

아이들이 부모(성인)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부모도 아이의 세계에 존재한다.

_이사벨라 버톨라미

(부모는 아이들을 작은 어른처럼 대한다.-역자 주)

사실 (미국인들에게는) 프랑스 육아의 진짜 비밀은 전국민의료보험, 16주 유급 육아휴직(28일 유급 아빠 휴직), 만3세 이후부터 의무공교육, 감당할 만한 대학 등록금일테다. 하여튼 프랑스 부모들이 공통으로 알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궁금증은 여전히 존재한다.

관대하고 좋은 부모와 권위적인 부모 사이,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

현재 프랑스에서 진행되고 있는 뜨거운 논쟁이라고 한다.

전후에, 소아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프랑소와 돌토는 말하기를, “전통과 교육적 원칙에 의해 프랑스 아이들을 매일 트라우마를 겪는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보자고 주장했다. 돌토의 반대자들은 돌토가 ‘어린이 왕’을 만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돌토의 주장은 프랑스에서 최근래 십여년간 유행했던 ‘긍정적인 부모되기'(뇌 과학에 기반하고 있다고 잘못 알려진)에서 제시하는 허용적인 부모상 같지 않다.

긍정적인 부모되기식 육아법은 2011년 프랑스 베스트셀러 ‘난 모든 걸 다 해봤다구!’를 쓴 이자벨 필릴리오자트에게서 유래한 것이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서 슈파마켓에서 사탕 사달라고 칭얼거리는 아이는 ‘과도한 자극들’에 의해 고통받고 있으며 짜증은 화가 난 게 아니라 ‘집적된 긴장의 근육을 통한 방출’이라는 것이다. 설령 그게 정말 분노일지라도, 부모는 ‘안돼’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전통적 프랑스 육아는 단 한 번의 단호한 노는 절대불변하는 것이다) 긍정적인 육아는 ‘넌 날 때릴 권리가 없어!’라고 말해주는 게 아니라 ‘두 손을 차분히 몸에 붙여라’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긍정육아법은 기존의 ‘시간됐다’육아법(제한을 명확히 하는)에 반해서 나온 것이다. 350명의 전문가들은 피가로지에 연판장을 발표했다. 그것은 ‘긍정육아의 과잉’이 아이들이 스스로 자랄 수 있도록 하는 제한과 체계를 제거함으로서 아이의 기본적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반대하는 내용이었다.

캐롤린 골드만은 긍정육아법에 대한 잘못된 정보들에 대항하는 ‘십자군’역할을 하겠다고 나섰다. 근래에 그는 무수한 ‘행동 문제’를 가진 아이들이 폭증하는 것을 보았다. 많은 부모들이 긍정육아법을 잘못 이해해서 아이들을 벌하면 이것이 트라우마가 되어서 아이의 뇌 발달에 영구적인 손상을 남길거라고 오해한 것이다. 골드만은 이건 말도 안된다고 주장한다. 바닥에 식사를 내던지는 아이를 ‘안아줄’ 게 아니라 경계를 명확히하라는 것이다. 중요한 건 아이 접시에 콩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엄마 아빠, 날 좀 멈춰줘요’라는 것이다.

골드만은 ‘타협하지 않는 규칙’은 아이에게 유익한 만큼이나 부모에게도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는 가족과 함께 정말 즐거운 시간을 매일매일 보낼 수 있다. 초콜릿을 먹고, 미친듯이 노래를 부르고, 간지럽히고, 안아주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아이가 타인에게 불편을 주는 순간 아이가 그 방을 나오게 해야한다.”

골드만의 이런 주장에 대해 긍정육아법을 지지하는 전문가 280명은 르몽드에 광고를 내어 그를 비판했다. 이는 오래된 강압적인 교육 원칙으로 회귀하는 것이며, 아동 학대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골드만은 2년간 긍정육아법 모임에도 참여했었다. 하지만 그는 ‘선량한 부모되기’라는 것 자체가 교조적인 목표가 되면서, 아이들의 심리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폭력적인 부모 자신들의 모습만 투사하는 그런 방식은 결코 좋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과거에는 확실히 프랑스 부모들은 미국 부모들에 비해 육아법에 대해서 대체로 하나의 선택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부모 전쟁’이 이들에게도 다가오고 있다. 프랑스 부모들도 여러 트렌드에 대해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전통적인 프랑스 육아법은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는, 엄격한 육아법이었다. 하지만 이에 반대해서 긍정육아법이 나왔다. 긍정육아법은 부모들이 부정적 반응이 아니라 긍정적 반응을 통해 아이와 교감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골드만 같은 이는 이런 방식이 아니라 제한을 두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논쟁이 붙었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중상 이상층에서의 출산률은 점점 감소하는 추세다. 자연히 어린이를 왕처럼 받들어 모실 수 있는 시간과 재력이 풍부하게 되었다. 이런 변화가 아마도 아이에게 엄격한 프랑스 육아법의 아성을 뒤흔든게 아닌가 싶다. 어쩌면 소셜미디어에 넘쳐나는 육아 조언의 대부분이 아무래도 미국에서 나오고, 프랑스의 젊은 부모들도 그런 영향을 받으면서, 좀더 허용적인 ‘미국식 육아법’이 프랑스에 도입된 게 아닌가 짐작해 본다. 세상은 점점 더 부모세대가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창의성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그 앞에서 기존의 전통적 육아법은 고루하게 보일 것이다.

답은 아무래도 ‘법고창신,’ 오래된 것을 참고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일 것이다. 전통 육아법에 대해 알면서도 그것의 지혜를 새로운 지혜와 조합하는 것이다. 미국식 육아법이 주를 이룬 한국에서는 ‘아이가 왕’인 방식과 ‘연공서열의 제일 밑이 애’라는 방식 사이에 새로운 방식의 육아법이 필요하다. 갈수록 1인 가구 등 고립이 심해지는 시대이기 때문에,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사회성’을 중점에 둔 육아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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