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권째 토지를 읽고 있다.
…임이네는 본시 죄의식이 얇은 여자다…
그러나 넘쳐흐르는 생명력,
조금만 땅이 걸고 짓밟지만 않으면
무섭게 자라나는 잡풀같은 생명력은
교활한 지혜를 위해 여유를 주지 않았다
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_전자책 85/297.
3권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임이네’가 어떻게 해서든지 끈질기게
생명을 추구한다는 사실이다.
그 잡초같은 생명력.
저자는 임이네가 가진 잡초의 성정을
그녀가 그저 보리 한 됫박이라도 자식들을 위해 얻으려고
무수한 남자들에게 치마를 걷은 것으로 표현한다.
거기에는 어떤 유교적 관념과 판단이 들어가 있지 않은
오히려 담담하게 말함으로서
임이네에 생명력에 찬동하는 것 같은 태도가 느껴진다.
자식새끼가 깔딱깔딱 숨이 넘어가는데
어디서 무슨 체면을 찾고 염치를 찾는 말이단가.
임이네는 죄의식 또한 가벼워서
자신의 남편이 살인죄로 끌려가 죽었음에도
자기도 이 동네에서 죄인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뻔뻔하달까, 아니면 당당하달까.
나 같았으면 벌써 제풀에 부끄러워 죽었을 것인데.
세상엔 역시 임이네처럼 악다구니를 악물고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주지 말고 싫은 소리 하지 말지.
_106.
이 책을 읽어갈 수록
내가 다 읽은 딱 하나의 장편소설,
최명희 선생의 ‘혼불’이 생각난다.
나는 혼불을 여러번 읽었다.
그러면서 자연히 거기에 풍성하게 자리한
전라도 사투리의 정겨움과 즐거움도 배웠다.
그 뿐 아니라
오래된 지혜가 담긴 말, 비유, 표현 등은
그대로 외워져 내 머리속에 박혔다.
그와 마찬가지다.
내가 굳이 2024년에 왜?
다른 읽을 책도 산더미 같은데 왜?
이 장편소설을 읽고 있는가
계속 자문하고 있는데.
위에 인용문 같은,
오래된 지혜를 배우려고
지혜가 표현되는 방법을 눈여겨 보려고
소설을 계속해서 읽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주지말고 싫은 소리 하지 말지,
너무나 지혜로운 말이다.
‘기대가 높으면 실망도 큰 법’이란 말과 비슷하다.
괜히 남에게 남이 요청하지도 않은 것을 해주고
감사해하지 않는다고 궁시렁 거리지 말라는 조언이다.
남에게 쓸데없이 기대하지 말 것이요
실망할 일도 만들지 말라는 말이다.
하기야 사람 사는 기이 어디 이치에 꼭꼭
들어맞더라고?
몹쓸 짓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남으 눈물로 잘 살고
허기진 사람은 손에 쥔 밥
한 덩이를 빼앗기어도
일어서서 싸울 힘이 없이니께로,
손발이 닳도록 빌어도
무상(무정)한 거는 하누님이다.
_182.
마흔 줄 넘겨 살아보니
젊어서 생각했던대로
세상이 공평하고 정의롭게 돌아가고
사필귀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반만 인정하게 된다.
아주 절망하지 않게 된 것은 다행이고,
그래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하며 살 것인가는
화두로 남는다. 매번의 선택으로 남을 것이다.
한국근현대사를 보면 드러나는 한 가지 진실은
선하고 의로운 일을 한 사람은 일찍 죽어 떠나고
더럽고 추하게 산 사람은 오래 오래 장수하다 가더란 것이다.
한국이란 사회가 이러한 이상은,
구원이란 남과 다르게 사는데에서 오지, 싶다.
하루하도 마음이 뻔뻔하고 편안할 날이 없지, 싶다.
하누님이여, 어쩌실 것이오.
진상이 이러하단 말이오.
어찌 가만 가만히만 계시오?
3권에서 가장 큰 변화는,
1, 2권에서 기, 승으로 발전시켜오던 사건들이
3권에서 전, 결로 드러나는 것이다.
스포일러가 되기 싫어
자세히 말할 수는 없다.
중요한 건 서희의 운명이다.
서희는 많은 것을 잃고
어느새 쑤욱 장성했으며
독자들을 긴장케할
적수를 만나게 된다.
곧, 새로운 플롯의 시작이다.
다음 권에서는 또 어떻게 승, 전을
이끌어 나갈지 기대가 된다.
첫 한 권 읽기가 힘들었다.
계속 새로 등장하는 비슷비슷한 거 같이 헷갈리는 인물들,
독해를 해야만 하는 사투리..
다행히 이제는 익숙해져서
빠르게 책을 읽어나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