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 남자간의 사랑은 뭐 달라?

요즘 영화와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핫한 ‘대도시의 사랑법’ 원작을 읽었다. 영화부터 보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아무래도, 소설이 주는 상상력이 더 크니까.

이 소설은 서너편의 단편소설을 한 편처럼 읽을 수도 있게 만들어진 작품이다. 첫 작품에 등장했던 인물이 그 다음 작품에서도 아주 간략하게 등장하는 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게 그렇게 큰 의미를 갖고 있진 않아서, 그냥 전부 따로 읽어도 상관없다.

저자는 한국에서 게이/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하고 서럽고 그지같은 일인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예컨대, 게이들은 공공장소에서 애정표현을 할 수 없다. 누가 하지 말라고 법으로 엄금해놨나? 그렇지는 않지만, 그렇게해서 게이인 사람의 정체가 드러나면, 그가 직장 등 사회생활에서 알 수 없는 불이익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혹은, 소설에 등장하는 꼰대 운동권 편집자처럼, 동성애는 미제의 산물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게이라는 것을 거부하고 부끄러워하며 사는 사람도 있다. ‘게이 같다’는 말이 내포하는 뜻이, ‘여성스럽고 시끄럽고 나대고 끼스럽다’라는 의미를 갖기 때문에, 현실 게이들도 남자와 성관계는 하지만, 게이는 아니다,라는 식의 관념을 갖기도 한다. 이를 MSM(Man having Sex with Man)이라고 한다.

소설의 화자 ‘영’은 게이고 ‘재희’는 동거하는 여성 룸메이트다. 재희의 캐릭터는 보수적인 독자들에게 심한 혐오감을 줄 수 있다. 성관계를 자유롭게 즐기는 적극적, 능동적 여성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묘사와 게이들의 자유로운 성생활 묘사 때문인지, 이 소설은 전자책 플랫폼, 밀리의 서재에서 평점이 3.7밖에 되질 않는다.

혹평들을 읽다보면, 정말 이런 사람들이 책 좀 읽는다 하는 이들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삶과 생각에 열려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못하고 자기가 가진 확신에 대한 증거를 찾기 위해 책을 읽는 사람들도 있다. 후자는 결코 좋지 못한 독서행태다.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지 못하고 자기 의견에만 몰입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묘사하는 게이와 여성 간의 우정이라는 주제는, 뒤에 붙은 해설의 표현대로 진부한 설정이다. 하지만 저자는 진부성을 ‘능동적인 여성상’과 ‘자세한 게이 생활의 묘사’를 통해 충격적으로 펼쳐보이고 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표현은 없기 때문에 선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다시 한 번 작품을 읽어보면서, 남자가 남자를 사랑할 때 어떤 일이 내면에서 벌어지는지를 자세하게 묘사한 부분을 읽어봤다. 그것은 여성이 사랑에 빠졌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사랑하게 되면, 소설의 표현대로, 상대가 원하면 자신의 가치관까지 바꿀 준비가 되지 않는가.

저자는 남자끼리의 연애는 이성애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게 달콤씁쓸한다고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게이의 연애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도 보여준다. 그것은 성관계를 꼭 사랑이 존재하는 관계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자유주의적 태도다. ‘영’은 자신의 남자친구가 홀로 여행가서 다른 남자들과 자고 와도 된다고 말하며, 자신도 어쩌다 알게된 부유한 유부남 게이와 호화스러운 여행을 한다. 그러면서 그에게 사랑이라기보다는 연민에 가까운 관심을 갖는다.

이러저러한 면으로 이 소설은 기성세대에게 너무나 충격일 것이다. 물론 현실세계에서는 그렇게까지 사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때로 예술은 인간이 살아보지 않은 데까지 사람을 밀어붙여보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만약 이렇다면 어떨까’의 세계를 보여줌으로서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미리 생각해봐주는 것이다. 그것이 소설이 가지는 고유한 맛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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