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이제 모두 타이거맘이다-뉴요커

 

우린 이제 모두 타이거맘이다. _ 제이 캐스피언 캥

에이미 추아의 책, ‘타이거맘의 전투곡’은 13년 전에 논란이 된 책이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중상층에서는 추아의 스타일에서 유래한 다양한 양육법이 시도되고 있다.

 

지난 주에 뉴욕타임스는 ‘어디가 좋은 학군지인가?’라는 기사를 냈다. 1위는 캘리포니아의 프레몬트고 같은 주 얼바인은 3위였다. 프레몬트는 주민의 60%가 아시아인이고 얼바인은 40%에 이른다. (지금 1위는 시카고 서버브인 네이퍼빌이다. 부촌이다. 실제로 거기 사는 한인 학생을 본적 있는데, 부모님은 모두 전문직이고 부유했지만 아이를 의대에 보내려고 하고 있었음-역자주) 그외 다른 모든 지역에도 상당수의 아시아인이 산다. 이런 것을 보면 모두가 타이거맘이 되고 싶거나 꼭 그렇진 않아도 비슷하게라도 그런 식으로 아이를 양육하려 한다.

나는 갈등하는 타이거맘이다. 우리 애는 꼭 뭐 피아노 바이올린이라든가 학원을 다니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아이가 몇 글자라도 매일매일 쓰고 난 후에야 스크린타임을 가질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이건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해주신 방법이었는데, 그때 나는 그 모든 순간을 즐기지는 않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내 글쓰기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걸 안다.

추아의 ‘세대별 의도 감소’이론에 의하면, 이민 1세대는 엄청나게 노력해서 터전을 일구면서 동시에 2세들을 전문직으로 길러낸다. 중상층이 된 2세들은 좀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아이를 또 키워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3세들 자신은 중상층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나타샤 웨이리쿠에 의하면, 아시아인 부모들과 경쟁해야 하는 백인 부모들은 평가방법을 변경해서라도 자신들의 아이가 더 유리한 평가를 받게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아이비리그들이 단지 성적만 보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보기 시작하자, 곧 아시아인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테니스 뿐 아니라 스쿼시도 가르치고 사회정의 봉사활동까지 시키기 시작했다.

추아는 예일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가르치는데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프레몬트 같은 학군지에서 왔으며, 그들은 전문직 외에도 다양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더라고 말한다. 타이거맘들은 이제는 더이상 바이올린만 가지고는 안되겠으니까 미술이나 환경활동 등, 다양한 관심사들로 아이의 이력서를 잘 만들어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추아의 타이거맘 양육법은 이제 시간을 지나면서 문화적으로 거의 인정받은 것 같다. 추아는 15년이 지나보니 이제는 누구나 다 아이들을 아이비리그에 보내려고 하면서 부모들이 더욱더 타이거맘이 되어가고 그런 부모와 아이들에게 불안장애가 늘어가는 것을 보고 있어 슬프다고 말한다.

추아는 타이거맘 양육법이 그래도 가장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 양육법을 ‘눈퍼주기 양육법’과 ‘헬리콥터 양육법’과 다른 걸로 분별하고 있다. 전자는 아이가 원하는 뭐든 길에 놓인 장애물을 부모가 치워주는 것이고 후자는 아이의 모든 의사결정에 부모가 참견하는 것이다. 양육경쟁이 과열화되면서 이젠 아시안 중상층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이 또다른 소수인종출신들에게나 혹은 전통적으로 아이를 아이비리그에 보내오던 특권층에게 밀릴까봐 더욱 불안해한다. 이건 누구에게도 좋은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다고 해서 그저 아이에게 자유를 만끽하며 놀라고하면서 아이가 기저귀 떼자마자 아이에게 상담사를 붙이는 방식(아마도 전형적인 백인 중상층의 방식인듯 하다-역자주)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무엇이든 가치 있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지루하고 힘든 시간을 보낼 줄도 ‘알아야 한다.’ 그저 ‘너의 꿈을 따르렴’이라는 원대한 단어들 갖고는 안 된다. 이런 방식은 말은 거창하지만 실제론 아무것도 못해내는 아이를 만드는 것이나 다름 없다.

흔들림 없이 일하는 습관과 용기라는 덕목이 과연 끝없는 아이 경쟁의 시장에서 생산될 수 있을까? 내가 쓴 다른 칼럼에서 말했듯, 경쟁적으로 뭘 하긴 하는데 왜하는지는 모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나는 타이거맘 양육법을 옹호한다. 다만 그것이 왜 하는지도 모르는 미친 경쟁에만 몰두하는 게 아니라, 아이에게 어떤 특정한 원하는 결과가 있지 않더라도 ‘바가바드 기타’를 읽고 마일리 사이러스의 노래를 즐길 수 있게 되기를 원할 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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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2010~20년대는 한류로 대표되는 아시안 유산이 미국 주류 사회에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낸 시기로 남지 않을까 싶다. 이제 백인 중상층은 아시아인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알게 됐고, 그 결과에 놀라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화 기생충이나 미나리,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등이 아시아인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기여하고 있다.

아시아인들은 밀 농경이 아닌 쌀 농경을 해왔기 때문에 서구에 비해 대체로 인구밀도가 높은 삶을 살아왔다. 이런 삶은 자연히 경쟁을 촉발하고, 열심히 사는 것, 살기 위해 잔머리를 굴려야 하는 것 등 많은 덕목을 만들어 냈다. 이런 심성이 아시아인의 심성이랄 수 있다.

반면 백인들은 제국주의 시대에 세계에서 가장 자원이 풍부하고 살 만한 땅을 모조리 차지해버렸다. 인구밀도는 적다. 자원은 풍부하고 땅은 넓다. 그러니 별로 경쟁적으로 안 살아도 되게 되었다. 그러니 자녀들에게 많은 자유를 주어도 괜찮았던 세상이었던 것이다. 이제 미국에서 그 세상은 과거의 일이 되었다. 아니 세계가 세계화와 이민의 물결에 휩싸이면서 가난한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살기 좋은 선진국으로 이민해서 열심히 아이를 전문직으로 길러내는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떨까? 유교 6백년 오로지 과거시험과 경관직(한성을 중심으로 한 직무)에 경쟁해온대로, 같은 체제가 계속되고 있다. 많은 희생과 부작용이 있지만, 대체로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면서도 전통적인 지식의 ‘주입’방법도 고수되고 있다.

나는 처음에는 무조건 미국식으로 아이를 키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아이가 그 아름다운 시절을 누리지 못하고 오후내내 학원버스에서 핸드폰이나 하게 되길 원치 않았다. 하지만 미국의 공교육이 엘리트 교육을 제외하고는 너무나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꼭 ‘왕창’ 주입식 교육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인들은 아이들과 놀이를 해도 뭐든 어떻게든 꼭 교육적인 교훈을 주려고 노력한다. 유아교육 전공자들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지만 어쩌겠는가. 육백년 넘게 이어진 전통인 걸. 하지 말래도 그렇게 하게 된다. 하지만, 캥의 교훈처럼, 우리도 뭘 하든 아이가 다양한 관심 갖는 것을 장려하면서도 결과가 꼭 명문대가 아니어도 된다고도 격려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다만, 한국사회가 그런 다양성으로도 먹고 살 수 있는지는 시간이 더 흘러봐야 하는 문제이기는 하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좀 나아졌다고 생각 되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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