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11월에 있을 미국 대통령선거 공화당측 부통령 후보가 바로 ‘힐빌리의 노래’의 저자인 J.D.밴스다.
나는 이 책에 대해 들은지가 이미 수년 되었는데, 미국에서 있느라 읽어야지 읽어야지만 하다가
이번에 부통령 후보로 나온 그를 보고 드디어 읽게 되었다.
밴스는 애팔래치아 산맥 근처에 모여사는
스코티쉬-아이리쉬계 후손으로
그 곳은 오직 절망과 가난만이 존재하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자랐다.
상대하기 피곤한 손님일수록 즉석 조리식품이나
냉동식품을 구매했고, 그럴수록
가난한 손님인 경우가 많았다.
_186.
한국에서는 가난한 계층만이 아니라
모든 계층이 즉석조리식품이나 냉동식품을 구매하기 때문에
미국과 같은 편견이 생기기 어렵다.
하지만 미국은 거의 모든 게 다 냉동식품으로 나와 있고
저렴할수록 성분표를 보면 온갖 첨가물질이 가득한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은 아마 식품규제가 있어서 저질저가식품은 아직까지는
미국처럼 판을 치지는 않는 듯 하다)
카트에 요리해먹는 신선재료들 외에
온갖 저렴한 캔식품, 냉동식품이 가득찬 경우를 말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수입에 따라 다니는 마트 자체가 달라진다.
밴스가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자신이 전문직이 된 이후에야 ‘홀푸즈’에서 장을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많은 제품을 저렴하게 파는 ‘월마트’에 가면
홀푸즈나 트레이더조스의 직원들이 주로 친절한 백인들인것과 달리,
영어도 잘 안 통하는 이민자들이 직원이지만 잘 안보인다.
나도 유학시절에 느꼈던 그 차이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나는 내가 너무 과민하게 뭉뚱그려서 생각하나 싶었는데
미국 사람의 눈에도 그랬던 것이다.
정부 보조금에 기대사는 사람들이 나도 못 사는 휴대전화를 쓰는데,
우리같은 사람들은 왜 돈을 벌면서도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_190.
현대사회에는 얼마든지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예컨대 최하위계층 복지가 좋아서
세금 내고 사는 차상위계층보다 더 잘 살게 되는 현상 말이다.
한국 정부는 워낙 국민들 자체가 이런 경우를 싫어하니까
복지를 줄이다보니 최하위계층이 굶어죽거나 자살하는 경우까지 생긴다.
사람 하는 일이 완벽하지 않지만,
내가 그런 차상위계층이라면 최하위계층을 보며 부러워하며 시샘하지는 않을 거 같다.
왜냐하면 나도 언제든지 최하위계층이 될 수 있기 때문이고
혜택을 받는 이들 중 일부라도 차상위계층-중산층으로 이동을 한다면
사회는 그런 사람들의 덕택을 보게 되겠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부작용이 있다해서 선별복지를 하네, 혜택을 줄이네, 제도를 촘촘히 하네,
그러다보면 결국 도움이 제때 제곳에 이르지 못해 죽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도 좀 알았으면 싶다.
반대로, 부유층들은 부당한 혜택을 안 누리나?
그 동네도 죄를 저질러도 비싼 변호사 써서 감옥에 안 가질 않나?
방만경영을 하고서도 정부 긴급자금지원금을 타내서 한몫 챙겨 떠나지 않나?
부당한 혜택을 누리는 일은 부유층도 지지 않으리라 본다.
그러니 꼭 ‘복지 여왕’이라는 혐오의 상징이 있다면,
‘특권 여왕’도 존재한다는 것을 똑같이 깨닫게 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정치는 이런 부당한 혐오를 개선하는 것인데
오히려 충동질해서 자기 표밭 삼는자들이 너무나 많다.
힘 있는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의 처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우리를 도우려고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_248.
아마도 밴스는 이 대목에서 민주당의 복지정책을 비난하는 듯 하다.
‘강남 좌파’현상이 무서운 건 바로 그래서이다.
개념으로만, 피상적으로만 하위층을 상상하며 복지정책을 구상하면
당연히 괴이한 일들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런 도움은 받는 사람에게 모욕감을 주고
선행을 한다는 이들에게도 위선자라는 비난을 듣게 만든다.
사회적 자본이란 친구에게 당신을 소개해주거나 과거의 상사에게 당신의 이력서를 건네주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어쩌면 그에 앞서, 사회적 자본은 친구들이나 동료, 멘토에게서 얼마나 많이 배울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척도라고 할 수 있으리라.
_287.
밴스의 상위층 진입 경험을 보면 내가 그동안 소문으로만 듣던
‘인맥으로 이뤄진’ 미국 지도층, 특권층 사회의 실체가 그대로 나타난다.
밴스가 해병대를 다녀와서 로스쿨을 다니면서부터
승승장구해 나가는 부분은 참 읽기 경쾌하다.
그 앞의 상당 부분에 이르는 그의 가난과 폭력의 경험 이야기는
쉽게 읽을 수 없는 무거움을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 부분을 읽으면서 불편함을 느꼈다.
‘만약 너가 흑인 남자라면?’ 과연 그래도 그렇게 사람들과
사회적 자본을 쌓을 수 있을까?
그가 자신의 ‘백인 우월주의 특혜’에 대해
아무말도 안 하고 지나가는 걸 보면서
어쩌면 이 사람은 이때부터 이미 편을 정하고,
정치권 최상층을 노리고
이 책을 쓴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부분에서는 문제적인 ‘미국 백인 남성성’에 대해서도
‘나는 그냥 잘 모르겠다’고 하며 슬쩍 넘어가버리는 것도 보인다.
“좋은 성적을 받는 남자애들은 ‘계집애 같은 놈’이나 ‘호모새끼’가 됐다”는 언급을 하면서
왜 그렇게 바라보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한다.
모르지 않을텐데?
솔직하지 못하다.
실력보다 운이 먼저라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확실히 그 둘보다도
적절한 인맥이 더 낫다.
_281.
밴스가 여기서 말하는 인맥의 효용은
특권적이 측면만이 아니라
적절한 충고가 오가는 좋은 인간관계, 우정을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의 다른 부분에서 밴스는
자신이 해외 파병을 나가서 만나게된
‘외국의 빈곤’을 한 번 보고나자
자신이 겪어온 빈곤은 그에 비하면 훨씬 나은 환경이었다고 말한다.
미국인의 일상에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자의식이다.
세계 최강대국이라서 애국심이 활활 타오르는 것 말고,
최강대국이기 때문에 특권만큼이나 책임도 막중하다는 걸 깨달으라는 말이다.
이 책은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하면 한 인간이
어려서부터 겪은 최악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밴스의 엄마와 할머니 덕분이었다.
두 분 다 그에게 악영향도 지대하게 미쳤지만
그래도 그가 타인의 처지를 헤아릴 줄 아는 선량한 마음을
끝까지 지켜낸 것은
비록 깨어지고 부서진 사랑일지라도
사랑은 사랑이라는 사실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슬프고, 감동적이기도 했지만,
확실히 미국 베스트셀러는 유머와 위트가 필수구나 하며 읽었다.
그리고 그런 위트는, 정말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들며 이뤄지기에
확실히 스마트한 사람이 제대로 부릴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여하튼 중간 중간 장면들이 어찌나 웃기던지.
지인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