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기,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 반미주의자가 아닌 교수가 쓴 미국 비판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

 

저자는 미국에서 박사를 마친 사회학자로서
주로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 사태 이후, 오바마 연간의 미국의 신문기사를 위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미국의 양극화는 잘 알려진 일이다.
“미국 전체 기업 주식의 83%를 상위 1% 부자들이 독점하고 있다”(전자책 24/201)고 한다.
그리고 “하위 50%의 미국인들이 미국 전체 부의 1%미만을 소유하고 있[다]”(26)
비정규직과 불완전고용을 포함한 실질실업률은 20%에 이른다고 한다.(29)

결론적으로, 불공정한 소득분배 구조와 계층구조에서 원래부터 실속은 없이 겉만 번지르르하게 존재했던 미국의 중산층은 최악의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그들의 허접스런 진면목 가감 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진면목이 노출되면서 그것이 이제껏 한낱 허상이었음을 일깨워주는 것을 넘어 그나마 그렇게라도 존재했던 미국 중산층의 급격한 소멸을 생생하게 중계해주고 있다.

_32.

심지어 미국의 실업률(실질 아닌) 빈곤율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직장을 잃으면 바로 빈곤층의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미국 사람의 일상은 저축을 잘 하지 않으며,
집은 40년 상환 담보대출로, 차도 대출로 사며,
생활비조차도 신용카드 리볼빙으로 돌려막기하면서 살고 있기에,
실업하게 되면, 집도, 차도 날리고, 건강보험 혜택도 날아간다.
(빈곤층이 되면 그래도 메디케이드라는 국가보험이 있긴 하다)

저자의 자녀가 다니던 공립학교에서는 교과서를 물려써야 한다는 것이다.
책값이 너무 비싸서 모든 학생 수만큼 살 수 없었다는 것이다.
교사도 대량으로 해고되어서 아예 학부모 자원봉사 교사들이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52)

이는 주정부고 연방정부고 다 갚을 수 없는 막대한 지출과 빚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복지에 돈을 물쓰듯 펑펑 썼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는 파산선언도 불가하다.

미국 사람들은 돈을 쓰지 않으면 세금으로 많이 떼가기 때문에 너도 나도
과소비하며 사는 게 습관이 되어 있다고 한다. (81)

그런데 미국에는 ‘비소구적 빚 또는 대출'(Nonrecourse Debt or Loan)이라는
한국에 없는 제도가 존재한다. 이는 채무자 이외의 모든 것을 처분해서
빚을 갚게 되는 상황이 되면, 처분은 하되 채무자의 미래 수입까지 손댈 수 없다는 법이 있다고 한다.(89)
이것은 양날의 검과 같은 효과가 있다. 채무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기업을 하다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하지만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도 있다.

저자는 도덕적 해이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미국이 전에는 가졌던 의로운 정신이 사회 모든 계층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얼마전 윤 대통령이 말했다가 난리가 났던 사안이 바로
저소득층도 음식 규제를 과감히 혁파해서 배불리 먹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미국에서는 정말로 누구나 배터지게 먹을 수 있다.
모든 물산이 한국에 비해 참 저렴한 편이다.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니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윤 대통령이 말한 규제 혁파를 하게 되면
미국처럼, 사람이 못 먹을 음식도 싸게 팔아 양만 채우는 꼴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질 좋은’ ‘진짜’ 건강한 소고기 같은 걸 사먹으려면
‘홀푸즈’같이 비싼 식료품점에서 유기농 소고기를 사다 먹는 수 밖에 없다.
역시 모든 게 미국이 좋은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안전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의 ‘광우병 소고기 사태’에 대해서
좌우파 모두에게 잘못이 있다고 지적한다.
우파는 무조건 미국 것이 안전하다는 관념을 버려야 하고,
좌파는 일부의 사실을 가지고 전부가, 곧, 광우병을 앓을 것처럼
공포를 조장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비판한다.

저자가 식품 관련해서 발견한 도덕적 해이의 사건들을 보면
‘사람 먹는 것’에는 절대 손 안대는 선진사회라는 명목과 다른 현실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할지라도
한국처럼 식품 범죄가 편만할까 싶다.

저자는 또한 미국에서 터진 입시비리 사건을 이야기 한다.
부유층 자녀들이 학교에서는 인플레된 좋은 학점을 받고
추천서도 좋게 받아 명문대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나는 항상 미국이 ‘정직, 투명’하다고 믿고 있었는데
특히, 내가 직접 경험해본 추천서 문화를 신뢰하고 있었는데
위에 누구는 그걸 악용하고 있었다니, 할 말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미래세대의 가치관이다.
설문조사들에서 상위층 학생들은 부정행위를 하며,
운동선수는 불법약물을 통해서라도, 심지어 곧 죽더라도
이기기만 하면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어딜가나 최고위층으로 들어가려면 불법 편법 반칙 변칙이 판을 치는걸까?
우리나라 윗물과 똑같은 행태에 실망이 된다.

저자는 미국인의 맹목적 애국주의와 모든 걸 돈으로 해결하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아직 한국은 비판정신이 살아서, 자국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다고 말한다.(157)

저자는 교육내용이 턱없이 부족하고 애들을 놀리기만 하는 공교육이
결국 정부의 어떤 행태에도 그저 ‘예스 예스’만 하는 순화된 국민성으로 안내한다고 비판한다. (160)

그렇다면 미국은 어떻게 선진국이며 노벨상 수상자가 그렇게 많은가.
저자는 미국 대학교육이란 것도 한국보다 특별난 게 없다고 한다.
하지만 수상자가 많은 것은, 워낙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162)

일말의 건전한 비판 정신을 미국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본다. 얼핏보면 무질서한 것 같지만 정당한 반기와 저항은 용인되기 때문이다. 언론이 살아있고 국민이 똑똑하다는 증거다. 불법적인 저항이 아닌 이상 언론에 재갈을 물리면 안되고, 자신과 다른 의견도 경청할 줄 아는 풍토를 앞으로 더 잘 만들어가야 한다.

_169.

저자는 마지막 사례로 9.11테러 이후 훨씬 엄격해진 공항 보안검색이
일반인에게 칩까지 삽입하려는 시도로 이어질 수 있다며
경계심을 나타낸다. (174)

 

저자는 위에서 말한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미국이 망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지만,
그것은 저자의 극단적인 성격이 작용해서 내린 극단적인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상생활에서 고요와 평화를 사랑하는 미국인들이
열심히 법을 지키고 규칙대로 사는 것은,
그들이 순화된 바보라서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애국심이 강요되는 것 같은 압도적인 분위기가 있긴 하지만,
미국 사람 비판적인 정신 있는 게 어디 가겠나.
그런 정신이 퓰리처 상을 받을 만한 훌륭한 추적탐사보도를 낳고,
대통령일지라도 법이라는 최후의 금도마저 넘어서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미국인들이 공교육 수준이 별로고 대학 진학률이 낮기 때문에
민도가 낮은 점은 분명히 있다고 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과 함께 식자층도 꾸준히 준법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일하는 차와 외제차만 차선 끼어들기를 뻔뻔하게 하지 않는다.
특권의식은 허용되지 않는다. 물론 저 위 상류층, 그들만의 이너서클에 가면
솜방망이 처벌이 있고 거짓도 있지만,
우리보다는 나은 부분이 있으니 선진국인 게 아니겠는가.

저자식대로 말하면, 부정직과 거짓이 일상화된 우리나라가 망하면 더 빨리 망하지 않겠는가.
미국의 의외의 모습을 보여준 공에는 감사하지만,
판단에까지 동의되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저자의 사례가 너무 극단적 경험인
2008년의 금융위기 이후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도
형평성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를 비판의식있는 깨어있는 사회로 지적한 부분은
나도 동의하는 바여서 흥미로웠다.

제대로된 미국 비판서가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비판의 경지에 오르려면 한국과 미국 모두를 잘 알아야만 한다.
언젠가 그런 비판서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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