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혹은 ‘미국인’이라는 말은 그것들이 지칭하는 사람들의 기원, 역사, 연고, 혹은 문화에 관하여 믿을만한 정보를 전혀 제공해 주지 않는다.
_전자책 6/79
저자는 “미국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사회”(11)로서
미완성이 하나의 특징이라고도 했다.
이민자들의 국가로서,
그들은 떠나오면서 모든 과거와 구연을 뒤로하고
오로지 새로운 미래를 향해서 미국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미국이 ‘미래지향적’사회라고 하는 것이 맞는 게
과거를 돌아봤자, 모두의 과거, 공통의 과거라는 것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공공생활에의 참여야말로 미국인들의 가장 위대한 교사이자 미국사회를 통일시키는 힘
_알렉시스 드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재인용, 15.
미국인들의 민주주의와 자치에 대한 헌신
_같은곳.
미국을 관찰했던 토크빌처럼, 스웨덴인 거나 미르달은 <미국의 딜레마>(1944)를 남겼다.
그 책에서 미르달은 ‘미국의 신조'(American Creed)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것은 “서양세계의 일반적인 이상들, 즉 모든 인간의 본질적인 존엄성과
평등 및 자유와 정의, 기회에 대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는 것으로서, 미국인들은 그 사상이
가장 명시적으로 표현된 체제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말로 미국인들은 공공생활에 열심히 참여한다. 저들은 혹여 어려서부터 ‘참여주의’라는 걸 따로 배우나, 싶을 정도다.
그것이 동네의 한 건물부지 용도와 디자인에 관한 공청회든,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집회든 간에,
그들은 자신들의 돈과 같이 소중한 시간을 들여서 얼마든지 참여한다.
반면에 한인 유학생들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 이해득실’이랄 수 있다.
그들은 지도교수님이 참여하는 자리에만 선택적으로 나타나 눈도장 찍히기를 원한다.
그 외의 자리는 설령 한국에 대한 것일지라도 득이 없으면 나타나질 않는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국가를 하나로 묶는 결합적 요소들, 즉 공통의 이상, 공통의 정치제도, 공통의 언어, 공통의 미국적 문화, 공통의 운명이 존재한다고 믿었다…미국인들을 하나의 국민으로 결속시켰던 것은 민주주의의 이상과 인권에 대한 공통적인 헌신[이었다]…미국인들에게 있어서 핵심적인 과제는 옛 문화들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미국적’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_28~29.
우리는 뉴스나 영화에서 미국인들의 집에 내걸린 성조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이 성조기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본능적으로 이것 말고는 우리를 하나로 묶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야구장에서도 국가를 부르고 시작하고
학교에서는 ‘충성 서약'(Pledge of Alliance)를 암송하곤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미국의 다문화주의는 미국인들을 하나로 묶고자하는 연방주의자들에 대항해 각 주만의 역사와 전통을 강조하는 독립주의와 함께 미국 사회를 이 구심력과 원심력으로 절묘한 긴장을 이루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책의 나머지 부분을 할애해서 미국내에서 크게 성장하는 ‘히스패닉’계 미국인들에 대해 언급한다.
흥미로운 건, 이들은 주로 미국 서남부에 대거 몰려사는데,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같은 곳들은 실제로 미국이 전쟁을 통해 멕시코에서 떼어난 땅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불법체류에 대해 ‘우리가 우리땅에 와서 사는 게 뭐 어떠냐’는 마인드를 가지고 그들이 미국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참으로 절묘한 ‘레콩키스타'(재정복)이 아닌가 말이다.
미국내 히스패닉 인구는 흑인인구를 앞질렀으며 앞으로도 빠르게 급증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이들이 믿는 가톨릭이 피임과 낙태를 엄금하기 때문이다. 이미 에스파냐어를 공용어로 지정하는 도시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이들만의 티비 방송사, 신문사, 학교, 성당, 상하원의원, 고위공직자, 하급관료 등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공용어로 지정됨에 따라 정부 문서도 모두 에스파냐어로 작성되고 있다.
개인주의를 중시하는 백인 문화와 달리, 히스패닉 및 흑인 문화는 한국처럼 가족주의, 집단주의적인 경향이 강하다. 과연 이들이 미국인의 신조인 민주주의, 기회균등, 평등, 자유와 같은 가치들을 잘 내면화하고 있을 것인가가 궁금하다. 흑인들은 그들만의 전통을 만들었지만, 불법체류하는 텍사스의 어느 멕시칸 가정도 과연 자유에 대한 공통된 신조를 가지게 될 것이냐가 문제인 것이다.
나는 에스파냐어 사용여부와 무관하게, 그들도 미국 시민권 선서를 하게 될 때쯤이면, 민주주의와 자유가 어떻게 좋다는 것을 이미 체득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민 2세대부터는 영어를 더욱 우월하게 사용하기도 할 뿐더러, 이들은 학교에서 무엇보다 미국의 역사와 전통을 배워 내면화하고, 그렇게 독립적으로 자라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는 미국이 미완성 사회라는 점과 다문화주의도 있지만, 공통의 민주주의적 가치들에 강력하게 헌신하는 미국인들이라는 점을 다시 깨닫게 해준 것이다. 다만, 문장이 마치 어떤 책을 번역한 것인양 너무 부적절하고 부자연스러워 읽기가 어렵다는 점은 단점으로 반드시 지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