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프랭클,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시나요

죽음의 수용소에서

한줄평: 우린 모두 성자로 살건지 돼지로 살건지 선택하게 되어 있다.

빅터 프랭클,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청아출판사, 종이책 2005년, 전자책 2020, 전자책 211쪽.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유태인 수용소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다름아닌 매일 세수를 하고 몸을 정갈히한 사람이었다’고.

나는 그 말이 필시 이 책에서 나온 말이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확한 워딩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이런 말이 있다.

수용소 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이런 [죽음의] 징후에 아주 익숙해져 있다…
이런 현상은 아침에 수감자가 옷 입고 세수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아니면 연병장으로 나가는 것을 거부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냥 포기하는 것이다. 자기가 싼 배설물 위에
그냥 그렇게 누워 있으려고만 한다.

전자책 118.

 

 

그들은 정신적으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가혹한 현실로부터 빠져나와
내적인 풍요로움과 영적인 자유가 넘치는 세계로 도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66)…
이 세상 그 어느 것도 내 사랑의 굳건함, 내 생각, 사랑하는 사람의 영상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내적인 삶이 심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예술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체험하는 경우도 있었다…
.,,수용소로 이송되는 도중 호송 열차의 작은 창살 너머
석양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잘츠부르크의 산 정상을 바라보는
우리 얼굴을 보았다면, 그것이 절대로 삶과 자유에 대한
모든 희망을 포기한 사람의 얼굴이라고 믿지 않았을 것이다.

_66, 70~71쪽.

나는 내 군생활이 혹독했기에
감옥이 나오는 소설이나 영화만 보면
모든 것이 규칙과 제한 속에 있던
군생활 때가 자주 생각나곤 한다.
그게 감옥과 뭐가 다른가.

나는 그래도 하늘과 비행기를 사랑했기에
공군에 가 있었던 것이다.
활주로는 드넓은 지평선과 너른 하늘을 보장한다.
나는 돌아가며 초병일을 서는 때에
그 긴 시간을 주로 황룡강과 주변 산들, 하늘을 보며 지냈다.
고된 하루를 보내고 석양이 질 때는
어쩐지 모두가 잠잠해진 트럭을 탄
사람들의 석양에 비친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기도 했다.
혹시라도 어떤, 인간적인 징후라도 나타날까, 해서였다.

잊지 못할 기억이 하나 있다.
이병 생활에 조금 적응하고 나자,
선임들은 내가 귀에 이어폰을 꽂는 것을 허락했다.
그래서 나는, 집으로부터
내가 쓰던 CD플레이어와 음반 몇 개를 받았다.

그리고 내가 초병 근무를 서는 시간에
몰래 가지고 나가서
이어폰을 끼고, 내가 처음으로 샀던 클래식 음반을 들었다.
그것은 헨델의 ‘메시아’였다.
그때의 그 감동이라니..
몇 개월간 온갖 긴장 속에 정신없이 살아
음악이란 것이 내 귓가에 늘 있었다는 걸 까먹었다.
그때 나는 내가 비로소 ‘인간’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군번과 군복으로 지워진 ‘나’라는 사람을 다시 찾아 들었던 것이다.

_pixabay.

수감자들을 심리학적으로 관찰해 보면
내면세계가 간직하고 있는 도덕적, 정신적 자아가 무너지도록
내버려 둔 사람이 결국 수용소 안 타락한 권력의
희생자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112)…

나는 살아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 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 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188)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 이것이었다.
나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군대에 갔기에
이 나이 어린 동생들이 계급장을 자기 삼아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군대라는 이유로
선량했던 자신을 버리고
똑같은 복수를 반복하고
나쁜 전통에 일조하는 것을 보았다.

내가 방공포병에서 군종병으로 옮겨갔을 때,
나는 첫 날부터 상욕부터 날리는 선임 밑에서,
자긴 병장이라고 원체 게으른 성격에
손 하나도 까딱 안하려는 그 선임 밑에서
혼자서 많은 일들을 처리해야만 했다.
나갈 준비만 하느라 자기 공부에만 골몰하는
그 선임을 나도 그냥 모든 일에서 배제시켜 버렸다.
군교회 신자들은 나를 불쌍하게 생각했다.

그 선임은 자기가 제대하는 날을 하루 앞두고서야
갑자기 내 앞에 무릎을 꿇더니
‘그간 내가 참 잘못이 많았다는 걸 깨달았다’며
자신을 용서해주고 친한 호형호제하며 지내잔다.
나는 그냥 안녕히 잘 가시라는 말만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각종 인간 군상의 참 모습, 바닥까지를 다 보는 게 군대다.
누구나 어떻게 생존해야할지 선택하게 되어 있다.
성자가 되느냐 돼지가 되느냐다.
방공포병일 때, 많은 선임들이 제대 전날 회식 자리에서
술병을 들고 미안하다, 호형호제하며 지내자,
어깨동무를 하고 술을 따라주면 후임들도 술 기운에 그러자는 모습을 많이 봤다.

나는 그 인간되기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자들에게는
가차없는 거부를 했다. 당신이 그간 한 짓을 명명백백히 기억하기에
나는 당신을 그렇게 함부로 용서할 수 없다는 게 내 마음이었다.

역사학도로서 나는, 늘 그런 경계심을 갖고 산다.
만일 지금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나치의 유태인 탄압 같은 일이면 어쩌냐는 것이다.

그 탄압이 자행될 때 많은 사람들이
양심을 저버리고 가족 때문에, 친구 때문에, 하며
박해받는 유태인들을 위해 행동하지 못하고
손쉬운 외면이라는 일상을 선택했었다.

성자가 될 것이냐 돼지가 될 것이냐,
우리는 사실 매일매일 역사에 남을 선택을 하며 산다.
역사가 지금의 나를 지켜볼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악습이 전승되는 것을 막았고
그래서 혼자 착한 척 한다, 질서를 무너뜨린다는 욕을 먹었다.

아니, 언젠가는 수용소가 해방되는 심판의 날은 오고야 만다.
모두가 그간 자신이 행동한 것에 대해 역사와 신 앞에
자신의 과오를 낱낱이 셈바치게 되어 있다.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짐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157)…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잊으면 잊을 수록- 스스로 봉사할 이유를 찾거나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것을 통해- 더 인간다워지며,
자기 자신을 더 잘 실현시킬 수 있게 된다.(160)
알다시피 인간은 행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시킴으로서
행복할 이유를 찾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192)

저자는 삶의 의미를 행복찾기, 아무런 걱정없는 안정의 상태에 이르기가 아니라
자신 삶의 시련과 고통을 끌어안음으로서 자기 삶에 책임을 질 수 있으며
이타적인 삶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내가 한때 우울증이 심해져서
날이면 날마다 죽을 생각만 했던 적이 있다.

유학시절,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받고
사람과 세상에 대한 환멸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내 삶은 가치있다고 할 게 없으며
결국 모두가 비슷비슷하게 사는데
굳이 내가 또 이 시련을 겪으며 그 역할을 해내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프랭클에 의하면
인간존재의 가치는 결코, 절대로,
인간의 유용성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이다.
삶에서 고난을 받아안으라. Embrace the agony.

그렇다. 나는 뒤늦게, 이 중년이 되어서야
내 삶의 의미를 찾았고 시련을 떠안고 살기로 했다.
나 자신만의 최고의 행복을 찾는 게 아니라
남을 위해 사는 삶 중에서 결국 나도 찾아질 거라
믿고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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