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마샬, ‘한국 요약 금지’, 찾았다, 한국인의 정체성!

저자 콜린 마샬은 강릉 출신 아내와 결혼해서 한국에서 살고 있다. 이 책을 보면 한 미국인의 한국살이가 어떤 것인지 잘 볼 수 있다.
한국어를 진심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이 책의 몇몇 글들은 그가 한글로 쓴 것이고
동네 독서모임까지 쫓아다니는
대단한 미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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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한국의 매력에 폭 빠진 귀여운 외국인’이냐하면
또 꼭 그렇지는 않다는 엄밀한 그만의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친한파라기보단 ‘지한파’ 정도랄까.
아마 그런 입장은 그가 외국인 독자를 염두로
글을 쓰기에 그러한 것 같다.

마샬은 이 책을 쓰면서 한미 독자를 공통으로 염두에 두고 썼다고 했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어떤 글들은 한국인의 입장에서 잘 읽히지 않는다.
특히 영어번역투의 글들이 그렇다.
초중반까지는 쉽고 재미있게 읽히다가
중반 이후부터는 좀더 심각한 정치, 사회 주제가 나오면서
마샬은 순식간에 전문 칼럼니스트로 변신한다.

 

마샬은 ‘서울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43가지 이유’를 든다.
우리는 참으로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지만
미국인의 한국살이가 아니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예컨대, 공공장소에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냐를 문명의 척도로까지 여기는 마샬로서는
깔끔하기 이를데 없는 한국 지하철 화장실은 놀라운 것이다.
(그러나 그가 술집에 딸린 남녀공용 화장실을 이용해봤는지 궁금하다)

대학교, 병원, 마트, 미용실 등이 모두 도보 10분 거리 안에 있다.
(이건 오로지 서울, 역세권이기에 가능한 일)

버스안의 사람들과 스타벅스 안의 사람들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미국은 그럼 계급차이가 난단 말인가. 그렇다. 미국에선 대중교통을 타는 사람들은
대체로 차를 소유할 형편이 못되는 이들이라는 인식이 있고,
그들은 스타벅스에 앉아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이들이다.)

영어가 많지 않아서 사랑한단다. 세상에.
비교대상 도쿄는 영어가 더 적단다.
아, 콩글리시 빼고 영어다운 영어가 없다는 이야기라면 이해한다.

스타벅스가 동네에 들어와도 밀려나지 않는 소규모 체인 커피점과 개인 커피숍.
(미국은 다 밀려나나보다. 또한 그는 ‘한국에만 있는 것들’중에
많은 것이 외국것의 대체제라는 점을 지적한다. 예컨대, 아래아한글이라던가,
맥도날드가 1위를 하지 못하게 하는 롯데리아라든가.)

또한 그는 독서모임 같은데에도 한 계층과 같은 피부색이 많은(백인 아줌마 할머니)
미국 독서모임과 달리 한국은 젊은 여성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인다고 놀라워한다.
그러면서 외국인들이 영어로만 말해주려는 한국인들 덕분에
한국에 수십년을 살아도 한국어 한마디 못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며
자신처럼 한국어를 배워서 독서모임에 남자들을 끌고 가는게 꿈이라고 한다.

나는 그가 단지 케이팝 가사를 깨닫기 위해서 한국어를 열심히 한게 아니라
견문을 더 넓히고 한 사회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위해서 열심히한 것이
참 멋지고 미국 사람답다는 생각이 든다.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는 자신의 자유로 선택한 일은
끝장을 보고야 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명명백백한 자의식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지적한다.
한국은 최첨단 인터넷 기술이 일상화되어 있고
오래된 서울 골목이며 지방 도시도 모두 소중한 나라인데
정작 한국인들은 그걸 모르고
아직도 계속 ‘세계속에 우수한 한국’을 전파하기 위해
쓸데없이 예산을 퍼부어 외국인들 비웃음 사는 영상이나
구호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일관계에서도 한국이 스스로의 힘을 (제발) 자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서울에 산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나는 한국만의 분위기가 무엇이었는지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전자책 135쪽.

사실 그의 말에 대한 힌트는 본인이 언급한,
한국은 어떤면에서는 오천년 역사의 나라지만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이력은 채 백년도 되지 않는 나라라는 것이다.

과연 한국인만의, 한국만의 정체성이 뭘까?
내가 미국에 있는 동안 항시 고민하던 것이다.
주말마다 하는 한국학교는 외교부 자료를 받아서 하기 때문에
한인사회에 통용되는 정서인 ‘우리것은 무조건 위대한 것이여’식의
납득하기 어려운 정체성만을 되풀이 한다.

내가 한인교회 전도사로 있을 때 나는
한국계미국인 2세들에게
한국만의 독특한 점, 내세울 만한 점은
바로 한국이 세계사에 거의 유일하게
백년도 안되는 시기에 엄청난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스스로의 힘으로 동시에 이뤄냈다는 점이라고
설교한 적이 있다.

나름 한국사학도로서 내린 결론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래서, 반만년의 역사가 뭐, 어쩌라고.
세계사에는 위대한 잉카 문명이나
앙코르와트 문명, 칭기즈칸 제국처럼
과거에는 위대했지만 지금은 별볼일 없는,
오래된 나라들이 많다. 우리만 반만년~ 할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 오래된 역사가 지금까지 이어져서 무엇이 다르냐는 말이다.
‘전통’의 문제다.
내가 정의한 한국의 정체성 안에 그 오천년의 전통이 녹아있느냐는 말이다.

마샬은 한국으로 이주하기로 한 이유를
미국 문화에 대한 실망감과 한국이 가진 미래를 믿는
긍정적인 한국사람들 때문에라고 말하고 있다.

엥? 한국인이 미래를 긍정적으로 본다고?
그건 다름이 아니라
한국인이 더 발전되어서 나아질 정치문화,
더 나아질 사회복지 등
지금껏 해온대로 하면 미래가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갖는다는 점이다.
또 그것을 위해 정말 빠르게 사람들이 변해간다는 것이다.
역시 한 미국인의 한국살이가 아니면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미국 문화는 성숙기를 지나 이제는 쇠퇴기에 이르렀다고 할 만하다.
미국 젊은 세대도, 더 이상 미래에 나아질 게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미국을 갈라놓는 인종차별도, 사람들이 절대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마틴 루터킹 목사가 1960년대에 주창했던 인종평등사회라는 희망이
지금까지도 인종차별이 계속되는 절망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나는 한국인들이 그토록 역동적이고 빠르게 변화해나가는 힘이
바로 오천년 전통의 기반이 있어서라고 주장하고 싶다.

한국의 또 하나의 자랑스러운 특징은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거대문명 사이에서
그토록 숱한 외세의 침략을 당했음에도
흡수되지 않고 한글 등 독자적인 문화를 이뤘다는 점이다.

한국인들은 오천년간 기본적 생존과 인권을 위해
악전고투해왔다. 근데 지도자 복은 지지리도 없어
존경할만한 인물이 늘 세종대왕과 이순신이다.

이러한 오랜 생존투쟁의 역사가
한국인에게 한으로 쌓이고
그게 에너지가 되어 폭발하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마샬에게 말해주고 싶다. 어떻냐고.





콜린 마샬, <한국요약금지>, 어크로스, 전자책 188쪽,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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